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의 핵개발 (문단 편집) === 폭로와 중단 === [[파일:external/static.ettoday.net/d589392.jpg]] (핵개발을 폭로한 장셴이, 1988년 1월 미국에 망명했다.) 1988년 1월 9일에 [[중화민국 육군]] [[대령]]이자 중산과학연구원 내 핵무기 연구센터 부소장이었던 장셴이(張憲義)가 미국으로 망명하여 대만의 핵개발을 폭로했다. 하필 1월 13일에는 장징궈가 오랜 와병생활 끝에 사망하는 바람에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.[* 장징궈가 장셴이의 망명으로 인한 충격이 결정타가 되어 숨을 거두었다는 음모론식 이야기도 있다. 그는 당시 [[당뇨병]]을 앓고 있었고 장셴이 망명을 보고받고 나서 3일 뒤에 사망했다.] 헌법에 따라 [[리덩후이]]가 총통 권한대행이 되었지만 당시 그는 [[중국 국민당|국민당]]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진 총통이 아니어서 대만은 정치적 공백에 시달렸다. 이 때 데이비드 딘 미국재대협회(AIT[* 미국이 대만과의 교류를 위해 설치한 형식상 민간기관. 주 대만 미국 대사관의 역할을 한다.]) 회장은 장셴이가 제공한 문건과 미국 첩보위성이 촬영한 소형 핵실험 위성사진을 들이대고는 하오보춘에게 “일주일 내에 핵 개발 계획을 중지하고, 핵시설을 폐쇄하지 않으면 [[타이완 관계법]]에 따른 기존의 방위 공약을 무효화하겠다”고 협박하였다. 더불어 [[IAEA]]도 특별 감사에 나섰다. 결국 [[대만]] 정부는 IAEA의 감사를 수용함과 동시에, 미국과 IAEA의 감시 하에 공식적으로 핵개발을 중단했다. 훗날 장셴이는 자신의 미국 망명, 핵개발 폭로가 장징궈의 사후 [[하오보춘]] 참모총장을 위시한 군부의 정권 장악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 위험이 높아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강변했다. 중화민국이 단순히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는 것을 넘어서 군부를 중심으로 실제로 핵무기를 생산 및 배치할 의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 했다는 논리이다.[[http://shindonga.donga.com/3/all/13/1179816/1|#]] 한편 장셴이는 미국 테네시 대학교에서 원자력 부문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미국 [[미국 중앙 정보국|CIA]]에 포섭된 상태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으며, 하오보춘도 장셴이가 도주했다는 것을 알자 CIA의 수작이라 확신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